과학과 만난 미술…부조리한 현실을 말하다

입력 2022-09-12 18:04   수정 2022-09-13 00:18


사람 키보다 큰 2.1m 높이에 옆으로 12m나 뻗은 흰 장벽이 서서히 분리되며 열린다. 35쌍으로 나뉜 몸체는 위아래, 양옆으로 출렁이며 노를 젓는 군무를 시작한다. 펼쳐진 노의 한쪽 면은 흰색, 다른 한쪽은 검은색, 중심엔 복잡한 기계 장치가 자리잡았다. 하지만 아무리 힘차게 노를 저어도 커다란 배는 꿈쩍하지 않는다. 배 안에 있는 두 명의 선장이 등을 마주한 채 앉아 정반대 방향으로 노를 젓도록 선원들을 지휘하고 있어서다.
30년 구축한 ‘기계생명체’의 세계관
지난 9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개막한 ‘MMCA(국립현대미술관) 현대자동차 시리즈 2022’의 대표작 ‘최우람-작은 방주’의 첫인상은 강렬했다. 30년간 살아 움직이는 듯한 ‘기계 생명체’를 만들어온 최우람 작가(52)는 작품 제목과 달리 ‘커다란 방주’를 들고 한국에 돌아왔다. 2013년 MMCA 서울관 개관 기념전에 참여한 후 10년 만에 같은 장소에서 작품전을 열었다.

최 작가는 국내파다. 1993년 중앙대 조소과를 졸업한 뒤 같은 대학원에서 조소를 전공했다. 그가 제작한 ‘기계 생명체’들은 첫눈에 반할 정도로 아름답지만, 너무 정밀한 탓에 마치 기계가 심장과 지능을 가진 것 같은 섬뜩한 느낌도 준다. 오차 없는 설계와 신선한 아이디어는 그에게 ‘대한민국 설치미술의 미래’란 호평을 안겼다. 이 덕분에 세계 각국의 비엔날레와 해외 유명 미술관의 ‘러브콜’을 받았다. 이번 개인전은 대만에서 연 대규모 전시회 이후 5년 만이다.

그는 살아 움직이는 기계 생명체 시리즈를 만드는 이유에 대해 “모든 생명체의 본질은 움직임이고, 기계문명 속에는 인간 사회의 욕망이 집약돼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전시회의 대표작인 ‘작은 방주’는 지도자들의 극한 대립으로 인해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하는 현대사회의 모습을 극적으로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작은 방주’는 실제 움직이는 작품이기 때문에 퍼포먼스 시간(오전 10시부터 30분 간격)이 따로 있다. 음악과 함께 5전시실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무대로 변한다.
꽃이 된 코로나19 의료진 방호복
최 작가는 이번 전시에 모두 53점을 출품했다. 이 중 49점이 이번에 첫선을 보이는 신작이다. 폐종이 박스, 버려진 볏짚, 코로나19 의료진의 방호복 천쪼가리 등 어찌 보면 흔한 재료에 최첨단 기술을 융합했다.

관람객을 처음 맞이하는 ‘원탁’은 지름 4.5m짜리 거대한 원형 상판을 짊어진 사람들(볏짚으로 만든 인간)이 서로 둥근 공(머리와 꿈을 상징)을 차지하기 위해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하는 작품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저만치 멀리 있는 꿈을 잡을 수 없는 현실을 보여주기도 하고, 사람들이 다 함께 힘을 합쳐 공을 지키는 공생을 의미하기도 한다.

미적으로 가장 시선을 끈 작품은 ‘하나’와 ‘빨강’이다. 금속 재료에 ‘타이벡 섬유(통기성 있는 고밀도 폴리에틸렌 섬유)’를 입혀 꽃잎으로 형상화했다. 꽃봉오리에서 시작해 활짝 피어나는 과정이 반복되는 패턴이다. ‘하나’는 흰색으로, ‘빨강’은 강렬한 빨간색으로 표현했다. 흰색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혼란에 빠진 시대에 대한 위로를, 빨강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인간의 생명력을 담았다.

설치 작품들뿐만 아니라 각 작품의 탄생 과정을 보여주는 드로잉이 함께 전시돼 작가의 아이디어를 따라가 보는 재미가 있다. 과학과 기계 문명의 발전 속에서 인간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 기술이 예술을 어디까지 진화시킬 수 있는지 함께 고민해볼 수 있는 전시다.

스크린 속 상상이 현실이 된 광경을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미술 애호가는 물론 공상과학 영화 마니아들도 짬을 내서 들를 만하다. 에이로봇, 오성테크, PNJ, 이이언, 클릭트, 하이브, 한양대 로봇공학과 등이 작품을 위해 머리를 맞댔다. 전시는 내년 2월 26일까지.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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